구채구로 가는 길
와, 시안에서 구채구로 가는 길은 정말 고되었다. 우선 시안에서 7시간 가량 기차를(똥차 K차였다) 타고 사천성의 광원(广元)으로 향해야했다. K차는 좌석도 매우 좁고, 그보다도 힘든 것은 그 시끄러움과 더러움이다. 전날 밤을 새버린 덕분에 그 상황에서도 잠이 잘와 무사히 광원까지 도착했다.
광원에서는 구채구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는데, 그 버스가 새벽에 출발하기 때문에 오후에 도착한 나는 광원에서 하루를 묵을 수 밖에 없었다. 버스터미널 주변으로 숙소를 구하는데, 값싼 숙소들은 외국인을 받지 않는다고 거절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하루 130원에 달하는 객실에서 묵어야했다. 방은 매우 구렸다. 광원은 측천무후의 고향이어서 심심한 구경거리가 있는 듯 했지만, 너무 피곤했고 날은 너무 더워 숙소에서 쉬었다. 피시방도 외국인이라고 거절하고, 매우 심심한 오후를 보내고나서야 나는 다음날 버스에 올랐다.
가는 도중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감숙성까지 거쳐간 버스는 도착까지 7-8시간이 걸렸다. 옆에 앉은 티베트족 청년의 덩치가 매우 커 어깨가 깨지는 줄 알았다. 구채구는 내가 처음으로 밟은 티베트족 지역인데, 티베트인들은 대개 몸집이 크더라.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 결국 오후 3시 쯤 구채구에 도착하기는 했다. 1박 2일을 걸려서 말이다. 내리자마자 드는 생각은 '아 춥다'. 구채구도 해발 3000미터 가까운 고원지대라 7월 한여름에도 반팔 반바지로 돌아다니기 추웠다.
숙소 근처에서
광원에서 숙소를 구하느라 애먹었기에 이번에는 미리 검색을 좀 해뒀는데 유스호스텔이 60원, 우리돈 만원 정도 하더라. 다행히 버스를 내리자마자 호객행위를 하는 아주머니를 만나 네 번이나 다른 데 알아보겠다고 가버리는 흥정을 통해 딱 60원에 좋은 2인실을 구했다. 인터넷에 등록도 안된 사실상의 불법숙박업소라 사기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덕분에 그 물가 비싼 구채구에서 외국인으로서 싼값에 지낼 수 있었다. 이 아주머니와 마음씨 좋은 그의 남편은 구채구에 머무르는 기간 내내 호의적이었다.
구채구
흔히들 '구채구만 보면 중국의 물은 다 봤다'라고들 하더라. 결과적으로 그 말에 동감한다. 사천성의 장족(티베트족), 강족 자치구 내에 위치해있다. 얼마전 지진이 난 주자이거우(九寨沟)가 바로 이 구채구다. 들어가는 길이 절벽 아래로 나있어서 지진에 굉장히 취약해 보였는데 복구가 잘 되어가고 있다니 다행이다.
구채구라는 말 자체는 아홉개의 산채가 있는 협곡이라는 뜻으로, 중간 중간 티베트인들이 거주하던 산채가 있어 기념품 따위를 관광객들에게 판다. 홍군이 대장정 당시 이 곳을 지나다가 아름다움을 발견해 유명해졌다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고, 중국에서는 5A급 풍경구이며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매표소 앞
전날 오후에도 입장은 가능했지만, 구채구를 돌아보는 데에는 꽤나 긴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결국 하루 밤을 더보내고 다음날 아침 개장 시간에 맞춰 찾아갔다. 그러나 보다시피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입장권과 버스표를 합해, 학생할인된 가격으로도 200원을 넘게 쓴 것으로 기억한다. 구채구는 내부와 외부 모두 물가가 상해 뺨친다.
이름 모를 봉우리
춥더라. 반팔 반바지만 챙겨온터라 반팔 티셔츠 두겹을 껴입고 바지는 여전히 반바지. 사람들이 한번씩 쳐다본다. 심지어 어떤 아재는 자식놈이 춥다고 징징대자 나를 보고는 저 형처럼 이겨내라고 하더라. 아침엔 정말 추웠지만 점점 해가 뜨면서 좋아졌다.
구채구에 들어서서 버스를 보면 원시산림행과 장해행이 있는데, 나는 원시산림행부터 가게 되었다. 거기부터 천천히 내려오며 걸었다. 자세한 지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죽해, 판다해, 진주탄 이런 식이다. 모두 물이 흐른다. 달리 무엇을 말할까.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사진을 감상하시길 바란다.
여기부터 물이 맑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전 공원을 걸어다니기는 무리지만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걷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 높은 곳에 물이 이렇게 많이
그리고 맑게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송사리 떼
점심을 먹으려는 데 우리나라로 치면 햇반 같은 것에 무장아찌를 조금 곁들인 게 25원이다. 물 한병은 당연히 10원. 어차피 맛도 없으니 트래킹을 준비하신다면 먹을 음식을 준비해가면 좋을 것 같다.
장해
구채구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오채지
아래로 내려올 수록 점점 이런 큰 강으로 합쳐진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구채구는 내가 중국에서 본 자연풍경구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들여야하는 시간과 비용이 큰편이지만, 사천성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지나치지 말고 한번 쯤 들려보시기 바란다. 물이 많은 봄부터 가을 시기까지가 가장 좋다고 한다.
떠나며
오후 4시쯤에 구채구를 내려와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주변에 만년 설산인 황룡산과 초원지대가 있다는 데, 앞으로 갈 행선지에 이미 만년설산과 초원지대가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추워서 준비가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이리저리 정보를 찾아보다가 낭중고성이 성도(청두)로 가는 길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매우 반가웠다. 그러나 일단 광원으로 다시 나가야했고 마찬가지로 새벽에 출발하는 차 밖에 없었기에 다음날 표를 예매하고서는 종래의 그 숙소에서 다시 잠에 들었다.
길가에 잠깐 멈춘 버스
새벽 같이 나와 버스터미널 앞에 당도해서는 거기있는 노점 앞에 중국인들과 둘러서 만두를 먹으며 허기를 떼웠다. 졸다 깨다가다가 감숙성의 어느 곳에 잠깐 내려서 쉴 때, 내가 여기 이런 사람들과 있는 게 참 비현실적이라는 기분이 들어 사진을 한장 찍었다.
휴대폰도 안터지는 황량한 곳을 중국인들 사이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고 있다니, 이미 지나왔던 길인데도 새삼 기분이 묘하더라. 물론 이런 여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더 황량하고 더 긴 탑승은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카카오톡 따위를 만지는 것을 본 옆자리 사람이 한국인이냐고 말을 건 것을 시작으로 나름 지루하지만은 않게 시간이 흘러가 결국 광원에 다시 당도했다.
광원역
버스가 늦게 당도하는 바람에 낭중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까지 3시간 가까이 기다려야했다. 구채구보다 훨씬 인간적인 가격으로 점심을 해결하고는 사진 속 저 세발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로나가 카페에서 시간을 떼웠다. 메뉴판에 아메리카노가 없어 내가 어떤 걸 마시고 싶은지 한참을 설명해야했다. 외국인이 처음이라더라.
다시 똥차
시간이 되자 다시 세발오토바이를 타고 역으로 귀환, 기차에 올라 사천성의 오랜 도시 낭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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