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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2017.2~)/여행기

03. 중국의 미래, 상하이

글을 쓰기에 앞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후배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좋은 조언과 식사를 베풀어주신 선배님 부부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주 전에 다녀온 상하이는 유람보다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진 여행이라 상대적으로 보고온 바가 적은 편이고, 아무래도 워낙 유명한 곳이라 내가 소개할 수 있는 바가 많지는 않다. (근데 다음 포스트도 그런 곳이다.) 


그렇지만서도 중국의 과거를 보려면 시안을, 현재를 보려면 베이징을, 미래를 보려면 상하이를 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중국유람기?를 작성하면서 어떻게 이 도시를 빼놓을 수 있을까. 낮에 써놓고 나갔던 내용들이 날라가버려 안그래도 골절로 고통스러워하는 검지손가락에 못할 짓 같지만, 다시금 써내려가본다.



상하이


전세계적으로도 아마 상하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중국의 경제중심이자 아시아 도시 중에서 GDP에 있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상하이 트위스트'가 알려져있듯 문화적인 영향력도 큰 도시이다. 한국인들이 우한은 잘 몰라도, 베이징과 상하이에 대해서는 친숙하다는 사실 자체가 갖는 의미도 적지 않을 것이다.


중화민국시기 상하이 조계지 지도. 황푸강 서변에 집중되어있다.


상하이가 처음부터 번화한 도시는 아니었다. 운하를 중심으로 물류를 운송하던 전통적인 중국사회에서 해변에 치우친 상하이의 입지가 딱히 매력적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양으로부터 침투하는 제국주의 세력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1842년 제 1차 아편전쟁이 끝남과 함께 상하이에 거류지가 형성되었고, 점진적으로 발전해 열강이 공동운영하는 조계지가 설립되었다. 장강 이남의 작은 어촌이던 상하이는 열강의 진입과 함께 본격적으로 도시로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중화민국이 잠깐의 번영을 구가한 소위 '황금 10년' 기간 난징과 더불어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다.


황푸강 동변의 푸동지구 발전상


중국인민공화국이 설립되고, 공산주의체제가 확립됨에 따라 외세와 자본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상공업 도시 상하이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마오쩌둥 사후 중국의 노선이 변화하면서, 해양도시 상하이는 해외로부터의 투자, 내륙으로부터의 성장동력에 힘입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와이탄


황푸강 서변의 구시가지, 라오상하이(老上海)

와이탄에서 바라본 푸동지구, 세계에서 3번째로 높다는 진마오타워와 8번째인 세계금융센터(环球金龙中心), 동방명주가 보인다


와이탄은 그저 강변을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상해의 와이탄은 그 경치로 인해 특별해졌다.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서변은 과거의 상하이를, 동변은 미래의 상하이를 상징하는 듯 대조적인 아름다움을 뽐낸다. 푸동지구의 마천루 너머에는 공항까지 직통으로 가는 자기부상열차가 있는데, 무려 시속 430여 km에 달하는 속도에 입이 벌어졌다. 우한에서 상하이까지 1000여 km를 기차를 타고오면서 우리나라의 KTX에 해당하는 고속철도가 중국에서는 너무 느리다는 사실을 체감했었는데, 저런 자기부상열차가 전 대륙에 건설된다면 그 경제적 잠재력이 엄청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동지구에서 내려다본 와이탄


상하이의 야경을 구경할 생각이라면 세계금융센터 87층에 있는 하얏트 호텔 라운지바를 추천한다. 앉아서 편하게 관람할 뿐 아니라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 상하이 여행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었다.


예원


예원을 둘러싼 상권의 입구


예원은 명대에 지어진 정원이다. 예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를 둘러싼 상권이 인상적이었다. 중국 전통양식을 모방해 지어진 상가들에는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문화적인 분위기가 있어 이채로웠다. 사람이 미어터져 답답한 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운 느낌도 없지 않았다.



예원은 명대에 어느 부자가 부모님을 위해 지은 정원으로 강남 이남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하며, 규모가 상당히 크다. 여러 연못과 기암괴석들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앞서 말한 이유로 상하이는 중국적인 색채보다도 서구적인 색채가 강한 도시인데,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 유독 서양인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물론 우한과는 달리 국제적인 도시이니만큼 외국인이 어디서나 많이 보이지만 말이다.


상해임시정부


임시정부로 들어가는 골목은 건너편 고층 아파트들과 화려한 상권 속에 숨어 찾기도 힘들다

임시정부가 존재했던, 당시 프랑스 조계지의 골목


상해에 온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거치지 않을까 싶은 임시정부기념관이다. 지도를 보면서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몇번을 지나칠만큼 정도로 초라했다. 예상보다도 너무 작은 실내에 숙연해졌다. 중심이 되었던 상해임시정부청사가 이런 규모였으니 당시 독립운동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 진행되었는 지 짐작도 하기 힘들다. 


당시 상해임시정부 구조. 매우 좁다


노태우 이래로 박근혜까지 6명의 대통령이 모두 다녀갔음에도 저런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배가시켰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임시정부기념관을 확대하고 보수했으면 한다. 그러나 건국절 운운하며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역사적 뿌리로서의 임시정부를 부정하고자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아직은 요원해 보이기도 했다. 이명박 전대통령이 남긴 글귀를 똑같이 옮긴 듯한 박 전대통령의 공허한 방명록 옆으로는 임시정부기념관에 비록 작은 돈이나마 기부하고 떠난 학생일동, 가족단위 시민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상하이, 그리고 중국


상하이 밤거리의 가로수. 조명에 둘러쌓인 저 나무는 건강할까?


상하이는 분명히 아름다운 도시였다. 가히 아시아의 뉴욕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교통법규도 잘 준수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깨끗하기도 했다. 서울과 거의 다름 없는 것으로 체감되는 물가와 도로에 무수히 굴러다니는 외제차들을 통해서도 이 도시의 부를 느낄 수 있었다. 상하이를 보면, 중국의 미래를 볼 수 있다던 말이 새삼스러웠다. 이 곳은 내가 거쳐온 내륙의 중국과는 확연히 다른 메트로폴리스였으니 말이다.


자녀들의 배우자를 구하는 전단지. 필수요건은 '상하이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상하이의 부는 건강할까. 길을 걷다 들어선 공원에서 발견한 풍경이 이런 의문을 던져주었다. 이 도시의 부는 우한으로부터 이곳까지 1000여 km에 달하는 거리를 가득 매운 그 광활한 농촌으로부터의 동력을 딛고 쌓아올린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서변의 광활한 지역이 상하이의 부를 위해 '경제적 비용'을 부담한 것이기도 하다. 


우산 위에 자녀의 신상을 적어놓고 사위감, 며느리감을 모집하고 있다. 혼인이 성사되는 일이 있을지 의문이다


중국은 출신지에 일정정도 긴박되는 호구문제, 폭동 발생 수위를 한참 넘어선 빈부격차 등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산적해있다. 와이탄의 화려한 건물들 아래의 상하이는 상하이인과 외지인, 내환과 외환, 빈촌과 부촌이라는 확연한 구별이 존재하는, 중국 현대사회의 단상을 잘 보여주는 도시이기도 하다.


마치며



사드문제로 경색된 한중관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난 대부분의 중국인은 호의적인 것을 넘어서서 과도하게 친절했고 그것은 상대적으로 한국인이 많은 상하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교통사고가 나자마자 책임을 발뺌하는 사람,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려는 태도로 응대하는 사람도 있다. 조심히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곳에 오기 전 많은 중국 관련 수업들을 들으며 어쩌면 교육 받았거나, 어쩌면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로 학습하게 된 중국에 대한 편견이 이미 많이 사라진 상태였지만, 오늘만 해도 두 번이나 중국인들에게 감동받으면서 나는 정말 이 나라 사람들이 좋아진 것 같다. 길지 않은 교환학생 기간이 더욱 짧게 느껴진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밤중의 상하이


우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일생에 다시금 중국에서 거주할 기회가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방문할 기회는 심정적인 이유만으로도, 꽤나 많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상하이 역시 재방문할 기회가 많지 않을까.



다음 포스트는 지난 청명절 연휴 동안 다녀온 장가계에 대해 작성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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