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글에도 썼지만 중국인들은 모두 친절하고, 중국 생활 다 좋다. 다만 하나만 안좋았다. 그 하나가 무엇이냐. 바로 디엔동이었다. 디엔동을 산지 한 50일 지났을까. 그동안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굉장한 수난사다.
무려 2km다
내가 거주하는 외국인 기숙사에서 수업을 듣는 정보학부의 건물까지 2km나 되니 디엔동이 없이 지내긴 힘들었다. 손이 다치기 전까지 줄곧 다니던, 공학부에 위치한 헬스장도 걸어서 30분이 걸릴 정도이니 아무래도 일상이 편하려면 디엔동을 사야했다. 고로, 서문 바깥에 위치한 디엔동집을 찾게 되었다.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한심한 녀석
동행해준 친구의 현란한 흥정으로 무려 100위안이나 깎고 구입한 첫 디엔동이다. 고작 반년 쓰다 갈 거 비싼 걸 살 필요가 없었기에 중고차만 봤다. 가격은 무려 9만원. '자전거보다도 싸잖아?' 매우 만족스럽게 디엔동집을 나오고나서 기숙사로 들어오는 데.. 왠걸 언덕길을 못오른다. 내가 무겁긴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잖아? 손으로 끌고 발길질을 하며 가까스로 넘어갔다. 아무리 싸다지만 이런 물건이면 디엔동으로서의 역할을 못한다. 결국 다음날 다시 찾아가서 웃돈을 주고 다른 놈으로 바꿨다.
그렇게 700위안 짜리 디엔동을 타게 되었다. 언덕도 잘 오르고 아주 만족스럽게 나온 다음날, 바퀴가 굴러갈 때 마다 요상한 소리가 난다. 결국 서문의 그 디엔동집을 다시 찾게 되었다. 3일 연속이다. 이 때부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바퀴에서 소리가 나는 문제는 손쉽게 해결되었고, 고로 다시금 잘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타고다닌지 일주일이 되가던 어느날, 이번에는 덜컥하는 소리가 나더니, 땡길 때 엄청난 굉음과 진동이 울린다. 굉음 때문에 쪽팔린 것도 문제지만 힘이 떨어져 또 언덕을 못오르는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고장이 났다.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이 무거운 놈을 손으로 끌어 언덕길을 넘어가면서 다시 그 서문의 디엔동집에 갔다.
근데 이 놈들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지 않는가. 만져보는 척하더니 잘 굴러다니니 됬다고 한다. 내가 외국인이다보니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해서 지껄이며 문제가 없다고 일관하는 것이다. 일단 수업에 가야하니 수리해놓으라고 하고 두고 떠났다.
다음날 돌아와보니 손도 대지 않았다. 이거 안고치냐고 물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공회전을 시키며 소리를 계속 울리니 하는 소리가 새거를 새로 사라는 것. 결국 나로서도 최후의 카드를 쓸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환불하라는 것. 산지 일주일 되었는 데 이렇게 되었고, 저런 상태로라면 타고 다닐 수가 없으니 책임지고 환불하라고 나가자 조금 온순해졌다. 그러나 사장이 악마의 거래를 제안한다.
바로 내부부품 중 하나인 공제기를 바꾸라는 것, 비용은 대략 한국돈 2만원이다. 그것만 바꾸면 되는 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욕이 나왔지만 돈을 조금 더써서 타고다니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맡겨 놓고 다시 다음날 찾아갔다.
근데 왠걸, 차가 힘이 조금 좋아지기는 했지만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아 그 스트레스란. 다시 환불하라고 요구하면서 한시간을 말다툼을 하고, 더 이상 못 고친다는 거를 그냥 그 자리에 두고 나왔다. 이렇게 돈을 날려버릴 수는 없어 꼭 환불을 받아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현란한 흥정 실력을 보여준 일전의 친구와 다음날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소리와 진동이 없어졌다. 3일 연속 찾아간 고생 끝에 결국 고쳐놨다. 시험 운행을 하고 괜찮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고맙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를 않았다. 그렇게 디엔동을 타고 한달 정도 문제 없이 지냈다.
저 모든 짐과 도합 160kg의 성인남자 둘을 싣고도 언덕을 잘 오르던 녀석
그러던 어느날, 언덕길을 오르다 다시금 턱하는 소리와 함께 소리와 진동이 찾아와버렸다. 바로 위의 저 사진을 찍은 날. 삼겹살이 그리웠던 우리 일동은 멀리 마트에서 바베큐 용구와 술 등을 사서 파티를 벌일 예정이었고, 운반책은 나의 디엔동이 되었다. 유독 무리를 많이 한 그날 이 놈이 예전의 그 상태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이 녀석을 산 종래의 그 집에 전화를 했다. 그러자 다시금 하는 말. 새거를 사란다. 바로 끊어버렸다. 결국 수소문 끝에 출장수리기사를 부를 수 있었고, 이 양심적인 수리기사는 디엔동을 뜯어보더니 전선 접합이 잘못된 것 뿐이라고하고는 조금 만지더니 3천원 받고 떠났다. 잠깐, 전선 접합 문제 때문인거라면 예전에 그 2만원 짜리 공제기는 왜 바꾼거야? 그 자리에서 담배를 몇 대 폈는 지.. 그 수리기사 전화번호는 디엔동구세주라고 저장해버렸다.
중국에서 먹는 것 치고는 아주 비싼 첫
바베큐였지만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붕붕이의 활약으로 그날 저녁 우리는 동호변에서 맛있게 고기를 먹고 밤늦게까지 놀다가 들어갔다. 그러나 디엔동 흑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장가계 여행을 떠나기 전날, 헬스장을 가기 위해 디엔동을 타고 나가는 데 앞바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살펴보면서 기숙사 앞으로 나가다가 그만, 자동차와 정면으로 부딪혀 버렸다.
차의 보닛에 머리를 박고 정신을 차려보니 손가락에 격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자동차에서 내린 아지매는 자기가 어떻게 했어야 되냐며 책임을 발뺌하더니 내가 도로에서 디엔동을 치우자마자 자동차를 타고 사라져버렸다. 디엔동은 앞바퀴가 망가져 버렸고, 결국 힘겹게 다시 기숙사 주차장에 가져다 놓고 보니 검지 손가락이 퉁퉁 부어있었다.
잘 안보이지만, 작은 골편이 있다더라
물어물어 찾아간 학교 병원은 행정절차가 굉장히 번거롭고 불친절했다. 접수하고 진료하고 사진 찍고 고정하는 4 단계 마다 번번히 1층에 찾아가 돈을 내야했다. 결국 예상한대로 손가락에 골절상을 입었다고 진단 받았고 4주간 고정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고정은 굉장히 불편하고 괴상하게 해놔서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바꿔버렸다.
디엔동의 흑역사는 이제 종점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다. 골절상을 입은 다음날, 나는 장가계로 떠났다가 돌아왔고, 그 다음 날인 수요일부터 다시 수업을 다녔다. 그 날 우산이 없는 내게 선뜻 자기 우산을 내어준 셔틀버스 아저씨, 그날 시작한 강의의 강의실을 못찾아 길을 물은 내게 웨이신까지 추가하며 열심히 도와준 박사과정 형님에게서 두 차례나 큰 감동을 받았다. 이 나라 사람들이 너무 좋아진 행복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다다음날, 드디어 비가 그치자 나는 종래의 그 디엔동구세주를 불렀다. 거금 2만원을 다시 들여 앞바퀴를 고쳤다. 이 디엔동의 가격이 점점 비싸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안고치면 못타는 데. 걸레를 가져다가 그간 쌓인 더러운 먼지들을 닦아내고 고 간만에 타고 나갔다. 요며칠 걸어다니다보니 다시 디엔동을 타고다니는 것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도서관 앞에 디엔동을 세워놓고, 도서관을 구경한 뒤 학교 밖으로 나가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예상한 그대로, 디엔동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어떤 놈이 그 무거운 걸 질질 끌고서 훔쳐간 것이다.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도서관 경비는 그저 보위부라는 곳을 찾아가라고 말했고, 힘들게 찾아간 보위부 놈들은 그 자리에는 cctv가 없다며 기숙사를 돌아보라는 말을 했다. 어느 기숙사를 말하는 거냐고 물으니 공학부~문학부~ 등 다 돌아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허탈함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금 도서관 앞으로 돌아와 그 자리에서 삼십분을 멍하니 서있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대학교 도서관, 학문의 전당의 전당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니. 그 순간은 중국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교환학생들을 소집해 동호로 나가 술을 먹어버렸다. 손가락이고 뭐고. 으악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면서 어떻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 나갔다. 예전에 고장으로 고통스럽던 당시 한 중국인 친구가 중고차는 고장이 잘나고, 새차는 훔쳐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는데, 고장 잘 나던 저 구린 중고차를 왜 훔쳐갔는가.
디엔동 흑역사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가히 지난 50여 일간 디엔동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겪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남은 것은 단 하나. 그 놈을 잡는 것!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넓은 학교에서 놈을 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그 놈이 학교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다. 다만, 잡힌다면 손이 다 낫기 전에 잡히는 것이 그놈에게 좋을 것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업은 가야되는 데, 다시금 디엔동을 살 엄두는 안난다.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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